중학교 2학년. 학교 학생의 30% 정도는 내 이름을 알았다.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어디든 끼어들었고, 어느 반에서나 까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해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 지금 돌아보면 그건 오해였지만 그때는 사실처럼 느껴졌다 — 그런 결핍감이 있었다.
그래서 더 떠들었고, 더 어울리려 했다. 방과 후엔 PC방으로 갔다. 함께 가는 친구들도 공부보다 게임에 끌리는 친구들이었다. 그게 우리의 공통어였다.
어울리지 못한다는 감각
지금 돌아보면 이상한 장면이다. 사방에 발을 들였는데 어디에도 진짜로 들어가지 못한 학생.
까불었다는 건 사실 표지였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표지. 그런데 속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래서 일단 시끄럽게 떠들었다.
집에서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학교에서는 어디든 발을 들이지만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PC방은 그래서 좋았다. 적어도 거기서는 내 자리가 명확했다. 같은 의자, 같은 모니터, 같은 게임. 친구들도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있었다.
게임에 빠진 건 어울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울릴 곳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PC방은 답이 아니라 도피였다. 그곳에선 시간이 쌓이지 않았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시작해서 같은 자리에서 끝났다.
믿음이 먼저였다
그러던 어느 학기, 체육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김○○ 선생님.
선생님은 내가 활동적이라는 걸 어느 사이엔가 알아채셨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체육반장 해라."당황스러웠다. 그 무렵의 나는 — 객관적으로 봤을 때 — 신뢰받을 만한 학생이 아니었다. 까불기로 30%가 아는 학생이지, 책임감으로 30%가 아는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셨다. 매주 수업 준비를 시키셨다. 운동장에 매트 깔고, 도구 챙기고, 분단별 인원 점검하고. 별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게 내가 맡은 일이었다.
그게 컸다.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하면 안 돌아가는 일이 생긴 것.
발달심리학자 에미 워너(Emmy Werner)는 1955년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698명을 30년간 추적했습니다. 그중 위험 환경에 노출된 201명 중 72명(약 1/3)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랐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 “단 한 명의 의미 있는 어른”이 곁에 있었다는 것.
— Werner & Smith, Overcoming the Odds, 1992
선생님이 내게 그 '단 한 사람'이 되어주셨다는 걸, 그땐 몰랐다. 지금도 그분이 의식적으로 나를 구하려 했던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 한 학생을 보고, 일을 맡길 만하다고 판단하셨을 뿐.
그런데 그 판단 하나가, 한 학생의 결핍을 가로질렀다.
성과는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었다
체육 시간만큼은 집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시간이었다.
그게 다른 과목까지 옮겨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체육 시간 한 시간이 일주일 전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라도 내가 맡고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 그게 다른 시간에 대한 태도도 천천히 바꿨다.
그 학기 끝 무렵,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했다.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결국 정확히 그 길은 아니었지만, 방향은 다르지 않았다 — 지금도 나는 교육이라는 영역에서 일한다. 결국 누군가의 곁에서, 누군가의 시간을 다듬는 일.
성과가 먼저였다면 — 내가 어떤 성취를 보여서 그 자리를 받았다면 — 이런 변화는 안 일어났을 것이다. 책임감이 성과보다 먼저였고, 믿음이 책임감보다 먼저였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선생님의 그 작은 믿음에서 시작됐다.
— naroc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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