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이 있었다. 누군가는 주말도 없이 48시간을 통째로 갈아 넣으며 회사의 미래를 고민한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는 이들이 있다. 정시 퇴근, 이른바 '칼퇴근'을 하는 직원들의 뒷모습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묘한 균열이 생기곤 한다. 나는 이렇게 밤낮없이 달리는데, 왜 저들은 정확히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만큼만 움직일까. 이 격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일터에서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계
일터에서 대표와 직원의 시계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대표에게 회사는 자신의 생존이자 정체성 그 자체에 가깝다. 주말이 주말이 아니고, 퇴근 후의 시간도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 이유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다음 달의 고정비와 새로운 돌파구가 교차한다.
반면 직원의 시계는 계약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약속된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고, 약속된 시간에 퇴근하는 것. 그것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규칙의 이행이다.
이 격차를 좁히지 못해 많은 리더가 조바심을 낸다. 내 회사처럼 여겨달라는 말, 주인의식을 가져달라는 당부는 대개 이 지점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곤 한다.
내 회사처럼 일해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가진 주인의 몫을 나누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헌신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
경영학이나 조직심리학에서 자주 다루는 개념 중 하나는 '심리적 계약'이다. 공식적인 근로계약서 외에, 조직과 개인이 서로에게 거는 무형의 기대치를 뜻한다. 많은 경영자가 직원이 시키지 않은 일까지 능동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라지만, 보상과 소유권이 비대칭적인 구조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은 명문화되지 않은 상호 기대를 뜻합니다. 이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 때 — 실패의 리스크는 개인이 지고 결실은 조직이 가져갈 때 — 사람은 안전 지향적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직원이 8시간의 방어벽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셈입니다.
— 조직심리학,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
결국 직원이 8시간만 근무하고 칼퇴근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리스크와 리워드의 균형을 맞추려는 지극히 정상적인 방어기제일지 모른다. 대표의 48시간에 담긴 절박함을 직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8시간 안에 담아야 할 단단함
그렇다면 리더는 그저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다.
직원이 퇴근 시계를 정확히 지키는 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그 문을 나서기 전까지의 8시간 동안 어떤 직업윤리를 보였는가이다. 책임을 다하고 조율된 목표를 완수하려는 태도, 그 밀도 높은 몰입이 있다면 8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진정한 파트너십은 서로가 같은 시간만큼 일할 때가 아니라,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의 역할을 존중할 때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48시간을 달리는 리더의 고독과 8시간을 견고하게 채우는 직원의 성실함이 만날 때, 일터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16년째 외식업을 지켜온 한 대표의 기록. 새 브랜드를 론칭하고도 마감 후 직원들과 저녁을 먹는 이유. "다 거쳐가는 과정이니까요."
새벽 두 시 반, 잠실 방이동의 불빛 아래에서 →— naroc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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