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널에서 직업윤리를 두 번 다뤘다.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는 대표의 이야기(No.03), 아무도 안 볼 때도 지키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
이번 호는 그 반대편의 기록이다. 묻는 사람이 같은 시험대에서 미끄러진 이야기.
나는 낮에 교육 영업을 한다. 사람을 만나고, 미팅을 잡는 전화를 걸고, 제안을 다듬는 일. 그리고 고백하자면 — 그 전화를 걸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었다.
멈춘 걸 눈치챈 순간
극적인 계기는 없었다. 그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한동안은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밀리기 시작했고, "이번 주는 안쪽 일부터"라고 한 주를 건너뛰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주에도 같은 판단이 합리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전화를 안 걸어도 하루는 굴러갔다. 사무실 일은 오히려 칭찬받을 만큼 처리됐다. 위에서도 재촉이 없었다. 그 침묵이, 어느 순간부터 허가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이걸 하는 게 맞는 시기인가 보다.
멈췄다는 걸 눈치챈 건 한참 뒤였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볼까 하고 수화기 앞에 앉았는데 —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시작했더라. 어떤 톤이었더라. 두 달 전에는 숨 쉬듯 하던 일이 낯설었다. 흔히 쓰는 말로, 감을 잃은 것이다.
No.05에서 소리 큰 일과 조용한 일 이야기를 썼다. 그 글을 쓰면서 정작 나는 알고 있었다 — 내 일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쌓이는 일이 영업 전화라는 걸. 사무실 업무는 소리가 크다. 마감이 있고, 요청한 사람이 기다린다. 전화는 조용하다. 오늘 안 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일이었는데.
감을 잃은 게 아니라, 문턱이 자란 것
"감을 잃었다"는 말을 뜯어보자. 두 달 만에 말하는 법을 잊었을 리 없다. 제품 지식이 증발했을 리도 없다. 잃어버린 건 스킬이 아니다.
심리학은 이 상태에 더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다.
미루기 연구자들의 결론은 통념과 다릅니다. 미루기는 게으름이나 시간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조절의 문제 — 어떤 일이 불러오는 불편한 감정(거절의 공포, 서툴러진 자신에 대한 실망)을 피하기 위해 그 일 자체를 피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회피가 단기적으로는 항상 효과가 있다는 것. 피하면 편해지고, 편해진 기억이 다음 회피를 부릅니다. 회피는 복리로 자랍니다.
— Sirois & Pychyl,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2013
내 두 달이 정확히 이 구조였다. 전화 한 통의 무게는 걸지 않은 날수에 비례해서 자랐다. 처음 건너뛴 주에는 "다음 주에 걸지"였다. 한 달째에는 "이제 와서 뭐라고 하지"가 됐다. 두 달째에는 수화기 자체가 무거웠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개념을 빌리면 더 선명해진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은 실제 수행 경험을 먹고 자란다. 거꾸로 말하면 — 공백은 그 감각을 갉아먹는다. 두 달의 공백이 갉아먹은 건 전화하는 능력이 아니라, 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니 정리하면 이렇다. 감을 잃은 게 아니다. 문턱이 자란 것이다. 능력은 그대로인데, 그 능력 앞의 계단이 매주 한 칸씩 높아진 것. 그리고 이 재해석이 중요한 이유는 — 처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을 잃었다면 다시 배워야 하지만, 문턱이 자랐다면 넘으면 된다. 한 번.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
멈춰보기 전에는, 이 문장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지속이란 다시 시작하는 것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 어디에나 있는 문장이다. 사무실 달력에도, 자기계발서 표지에도. 멈추기 전의 나라면 스크롤을 내리며 지나쳤을 문장.
그런데 두 달 멈춘 사람의 자리에서 다시 읽으면, 이 문장은 다른 걸 말하고 있다. 잘 보면 이 문장은 "멈추지 말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을 것 — 그러니까, 멈춤을 끝으로 만들지 말 것을 요구할 뿐이다.
카우아이 연구(No.04)의 가장 따뜻한 발견이 여기서 다시 돌아온다. 회복은 시기를 가리지 않았다. 늦게 피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10대에 무너졌던 사람이 30대의 어느 관계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 연구의 언어로 내 상황을 읽으면 — 두 달의 공백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멈춤이다. 끝인지 아닌지는 다음 행동이 정한다.
그래서 이 글은 반성문이 아니라 설계도다. 다시 시작하는 구조를 세 가지로 짰다.
첫째, 목표를 낮춘다. "미팅을 잡는다"가 아니라 "오늘 전화 한 통을 건다". 반두라의 처방 그대로 — 효능감은 작은 수행 경험으로만 다시 자란다. 문턱을 넘는 데 필요한 건 도약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계단 하나다.
둘째, 보는 사람을 만든다. 이 두 달의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나는 멈춘다. 그래서 이번에는 순서를 뒤집는다 — 본부장님께 먼저 말씀드린다. 이번 주부터 다시 걸겠다고. 감시당하는 게 아니라, 감시를 스스로 설계하는 것. 아무도 안 볼 때 지키는 원칙이 아직 내게 없다면, 볼 사람을 만드는 게 정직한 차선이다.
셋째, 시간에 박는다. No.05의 도구를 그대로 쓴다. 전화는 의지가 아니라 달력에 걸어둔다 — 매일 오전, 사무실 일이 소리를 내기 전 30분.
이 실험이 어떻게 됐는지는 몇 주 뒤에 다시 기록하겠다. 첫 전화가 얼마나 어색했는지, 몇 통에서 문턱이 낮아졌는지, 혹은 — 다시 멈췄는지까지. 선언만 하고 사라지는 글이 되지 않도록. 그게 이 저널이 말하는 지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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