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채널을 열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잘 나가는 자기계발 숏폼 50개를 순서대로 봤다. 알고리즘이 미는 것들, 조회수가 백만을 넘는 것들. 노트를 옆에 두고, 한 편씩. 첫 1초에 무엇이 나오는지, 몇 초에 전환이 오는지, 마지막에 무엇을 시키는지.
경쟁자 분석이라기엔 거창하고, 굳이 이름을 붙이면 — 지형 답사였다. 이 동네에 집을 짓기 전에, 이 동네의 건축 문법부터 알아야 하니까.
이 글은 그 답사의 기록이다. naroc이 왜 지금의 모양이 됐는지에 대한, 만드는 사람의 노트.
50개의 숏폼, 하나의 문법
쉰 개를 보고 나니 패턴이 보였다. 정확히는 — 쉰 개가 아니라 하나였다. 소재만 다를 뿐, 문법이 같았다.
첫째, 1초의 후킹. "이거 모르면 손해입니다." "상위 1%만 아는." 첫 문장은 반드시 시청자의 손가락을 멈춰 세워야 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손실의 공포다.
둘째, 숫자의 약속. 3가지 방법, 5가지 습관, 한 달에 천만 원. 복잡한 삶을 리스트로 압축할 수 있다는 약속. 클릭하는 순간 이미 절반쯤 이룬 기분이 드는.
셋째, 불안의 판매. 영상이 끝날 때 시청자에게 남는 감정은 대개 의욕이 아니라 초조함이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다음 영상을 누르게 하고, 알고리즘은 그 초조함을 연료로 돈다.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이 문법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기는커녕, 주의력이 화폐가 된 시장에서 가장 정교하게 최적화된 답이다. 나는 그 50편을 만든 사람들의 실력을 존중한다.
다만 답사가 끝났을 때 확인한 건 다른 것이었다.
문법을 알아야,
문법을 거절할 수 있다.
반대편의 빈자리
이 시장의 구조를 정확히 짚은 문장은 반세기 전에 이미 나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정보화 시대의 역설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낳는다.” 정보가 소비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주의력이므로, 정보가 넘칠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주의력이라는 것.
— Herbert A. Simon, 1971
50편의 숏폼은 전부 이 희소한 주의력을 1초 단위로 수확하는 기계였다. 그렇다면 반대편이 비어 있다는 뜻이 된다. 주의력을 수확하는 대신 돌려주는 콘텐츠. 읽고 나면 다음 것을 누르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화면을 덮고 자기 생각을 하고 싶어지는 글.
시장 논리로는 불리한 자리다. 알고리즘은 체류 시간을 사랑하고, 화면을 덮게 만드는 콘텐츠는 체류 시간의 적이니까. 하지만 답사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사실 — 50편을 연달아 본 나는, 시청자로서 지쳐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자극에 피로해진 사람들, 빨리 버는 법이 아니라 오래 가는 마음이 궁금해진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주 1회, 이메일이라는 조용한 채널로, 질문 하나를 남기는 저널. 그렇게 naroc의 자리가 정해졌다. 트렌드의 반대가 아니라 — 정확히는, 트렌드가 비워둔 자리다.
경계 긋기 — 본업, IP, 실험실
자리를 정한 다음 한 일은 글쓰기가 아니라 선 긋기였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걸 여러 번 봤는데, 무너지는 이유는 대개 열정 부족이 아니라 경계 없음이었다. 그래서 시작 전에 세 개의 선을 그었다.
본업의 선. 낮에는 강의를 기획한다. naroc은 본업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다 — No.05에서 선언한 목요일 밤 90분 블록, 그게 이 저널의 전부다. 대신 본업에서 배우는 것(사람들이 어떻게 배우는가, 어떤 질문이 사람을 움직이는가)은 저널로 흘러들어 온다. 경계는 차단이 아니라 일방통행 밸브다.
IP의 선. 인터뷰이의 이야기는 인터뷰이의 것이다. naroc은 실명 대신 결을 남긴다 — "외식업 16년 대표"처럼. 그리고 이 저널에 쌓이는 글과 질문들은 어떤 플랫폼에도 종속되지 않는 내 소유의 아카이브로 남긴다. 채널은 빌려 쓰는 것이고, 아카이브는 소유하는 것.
실험실의 선. naroc은 수익 모델이 없다. 당분간, 의도적으로. 무료 주 1회는 여유가 아니라 실험 설계다 — 돈이 개입하는 순간 "무엇이 팔리는가"가 "무엇이 옳은가"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걸 본업에서 충분히 봤다. 이 저널은 그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이 만들어지는지 보는 실험실이다.
50개의 숏폼을 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어디에 서지 않을지를 알기 위해서. 서지 않을 곳이 정해지자, 설 곳은 저절로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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